[옹플뢰르]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곳, 스승 부댕의 고향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지역 칼바도스(Calvados)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 마을 옹플뢰르(Honfleur). 이곳은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애정했던 곳 중 하나다.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풍경화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5살에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르 아브르(Le Havre)로 이사한 후 르 아브르에서 유년기와 십대 시절을 보낸 모네는 처음에는 캐리커처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1858년, 18세의 모네는 운명처럼 외젠 부댕(Eugène Boudin, 1824-1898)을 르 아브르에서 만나게 된다. 부댕은 옹플뢰르에서 태어났지만 모네처럼 르 아브르에 이사한 후에 르 아브르에서 견습 선원, 인쇄소 점원을 거쳐 문구와 액자 제작 가게를 열었다가 22세에 전업 화가의 길을 걷는다. 부댕은 모네에게 야외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그리는 ‘야외 사생(peinture en plein air)’ 기법을 가르쳤다.
모네는 처음에는 부댕의 그림을 "끔찍하다(affreux)"고 여겼다. 하지만 부댕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는 마침내 야외에서 빛과 색을 연구하는 기법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부댕을 통한 경험은 그의 예술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모네가 어떻게 옹플뢰르와 연결되었으며, 이곳에서 어떤 예술적 변화를 맞이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
1. 1858년, 외젠 부댕과의 첫 만남
1858년(1856년이라는 설도 있다), 16세의 모네는 르 아브르의 액자 가게 주인 그라비에(Gravier)의 가게에서 자신의 캐리커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당시 34세였던 외젠 부댕도(부댕은 1857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같은 공간에서 풍경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된다. 부댕은 모네의 드로잉 실력에 감탄을 했지만, 모네는 처음에는 부댕의 풍경화를 전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래 글을 읽어 보면 모네가 참 솔직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외젠 부댕의 그림을 보면서도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것들을 '끔찍하다'고 여겼다! (Il « voyait sans plaisir » les tableaux d’Eugène Boudin qu’il jugeait «affreux» !) (출처: Claude Monet & Eugène Boudin : la rencontre décisive)
당시 부댕의 어떤 작품이 액자 가게에 전시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기에 완성한 부댕의 작품을 가져와 봤다. 당시 부댕은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관찰하며 스케치를 하는 기법, 즉 '야외 사생(peinture en plein air)'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세느강 하구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늘과 빛의 움직임은 부댕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아래 그가 그린 《신선하고 완전히 뒤집힌(Frais et tout calbotté)》(1848-1853)은 하늘과 빛과 움직임에 대한 당시 그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나는 거대한 하늘을 그리는 것이 이상이었다... 하지만 화가는 제안하고, 하늘은 반대한다. (C’était mon idéal de faire des grands ciels… mais le peintre propose et le ciel s’y oppose.) – 외젠 부댕(Eugène Boudin) (출처: galeriearyjan.com)
하지만 클로드 모네가 그린 캐리커처는 어땠을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네의 부드러운 풍경화와는 전혀 달라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과장된 표정, 익살스러운 느낌의 캐리커처를 보니, 젊은 시절 모네가 얼마나 재치 넘치는 감각을 가졌는지 새삼 느껴진다.
외젠 부댕은 모네의 캐리커처를 보고도 이 젊은이가 풍경화의 거장이 될 가능성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처음부터 모네가 풍경화를 그린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부댕은 참 좋은 스승인 것 같다.
부댕은 포기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부댕은 모네를 야외로 데려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참 훌륭한 스승이야). 모네는 부댕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그가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었다! 빛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다음 날, 나는 캔버스를 들고 갔다. 나는 화가가 되었다… (Je l’accompagnais et, devant moi, il couvrit une toile… Ah, quelle révélation ! La lumière venait de jaillir. Le lendemain, j’apportai une toile : j’étais peintre… ) (출처: Claude Monet & Eugène Boudin : la rencontre décisive)
부댕이 모네를 끝까지 설득하지 않았다면, 모네는 풍경화가가 아니라 캐리커처 화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상주의 미술도 전혀 다른 형태겠지? 아래는 모네가 그린 스승 외젠 부댕의 초상화이다. 역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옹플뢰르의 외젠 부댕 미술관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미상의 부댕 초상이다.역시 옹플뢰르의 외젠 부댕 미술관 (Musée Eugène Boudin, Honfleur)을 방문하면 이 사진을 직접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화가 카롤뤼스-뒤랑 (Carolus-Duran, 1837-1917)이 1867년에 그린 27세의 젊은 클로드 모네의 초상이다. 이 사진은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Musée Marmottan Monet, Paris)에 소장되어 있으며, 모네의 초창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2. 1862년, 모네의 첫 옹플뢰르 방문과 예술적 전환점
1862년, 22세의 모네는 처음으로 옹플뢰르를 방문했다. 그는 절친한 동료이자 화가인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 1841-1870)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바지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모네를 종종 지원해주었으며,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바지유가 떠난 후, 모네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여기 없다는 것이 매우 유감이에요.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에서는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에요. (Je regrette bien que vous ne soyez pas là, car en pareille société il y a bien à apprendre.) (출처: Benjamin Findinier, Claude Monet Honfleur, Paris, Éditions des Falaises, 2021, p.12.)
아래 그림은 1860년대 중반, 모네가 노르망디의 작가들과 옹플뢰르 생시메몽 농장을 아지트 삼아 함께 작업했을 시절에 그린 바지유의 초상화다. 그림에서 바지유의 묵직한 성품이 느껴진다. 참고로 바지유는 1870년, 보불 전쟁에서 전사했다. 모네는 친구이자 동료인 바지유를 잃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3. 옹플뢰르에서의 장기 체류 그리고 인상주의의 길
모네는 생애 동안 총 세 번 옹플뢰르에서 장기 체류했다.
- 1864년 5월 말 ~ 11월 (약 6개월)
- 1866년 가을 ~ 1867년 겨울 (약 1년 가까이)
- 1917년 10월 (약 2주간)
🔹 1864년: 옹플뢰르에서의 첫 장기 체류
1864년 첫 장기 체류 당시, 모네는 외젠 부댕(Eugène Boudin)과 함께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직접 빛과 풍경을 포착하는 '야외 사생(Peinture en plein air)' 기법을 연습했다. 당시 그는 하늘, 구름, 거리의 풍경, 물과 건물의 빛 반사 등 순간적인 자연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려는 실험을 했다. 1864년의 모네 작품은 여전히 전통적인 구도와 세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지만, 빛과 색채, 하늘의 변화, 물의 반사 등을 연구하며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화가에서 ‘빛과 색의 변화’를 연구하는 인상주의 화가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된 해였던 것이다. 특히 야외 사생의 경험이 후에 1870년대 인상주의 화풍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864년의 모네는 후기 인상주의적 기법을 완전히 확립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과정이었던 것이다.
모네는 1864년 10월 말~11월 초, 부댕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모네와 부댕은 제자와 스승 관계이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참 좋은 동료 관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저는 아직 옹플뢰르에 있어요. 확실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괴롭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너무 아름다워서 즐겨야 해요. 파리로 돌아가기 전에 많은 발전을 하기 위해 저는 지금 창작에 심취해 있어요.저는 지금 혼자고, 작업에만 몰두하기에 솔직히 더 좋습니다. 3주 전에 착한 용킨드가 떠났어요. (Je suis encore à Honfleur. J’ai décidément beaucoup de peine à quitter. Du reste, c’est si beau à présent qu’il faut profiter. Aussi, je me suis mis en rage afin de faire d’énormes progrès avant de rentrer à Paris. Je suis tout seul à présent, et franchement je n’en travaille que mieux. Ce bon Jongkind est parti il y a trois semaines.) (출처: Benjamin Findinier, Claude Monet Honfleur, Paris, Éditions des Falaises, 2021, p.30.)
🔹 1866년~1867년: 옹플뢰르에서의 두 번째 장기 체류
1866년~1867년 두 번째 장기 체류 기간 동안, 특히 눈이 쌓인 옹플뢰르의 풍경에서 빛을 포착하여 색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1867년에 모네가 남긴 《수레. 눈 덮인 옹플뢰르의 길(La Charrette. Route sous la neige à Honfleur)》에 대한 오르세 미술관의 설명글을 읽어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왼쪽에 보이는 지붕은 생시메옹 농장(Ferme Saint-Siméon)의 것으로 보이며, 이곳은 당시 노르망디 지역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의 주요 아지트였다. 트루용(Troyon), 도비니(Daubigny), 코로(Corot), 쿠르베(Courbet), 부댕(Boudin), 용킨트(Jongkind), 바질(Bazille) 등과 함께 물론 모네도 이곳에서 자주 머물며 작업했다. 이러한 주제를 선택한 것은 쿠르베의 영향을 따른 것이었다. 쿠르베는 다양한 장르화에서 눈 덮인 풍경을 활용했지만, 그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사냥꾼과 사슴 등 특정한 인물이나 동물이 있었다. 반면, 모네는 거의 텅 빈 풍경을 그리며, 화면 속의 수레와 그 안의 인물에게도 극히 부차적인 역할만을 부여했다. 눈으로 뒤덮인 시골 풍경은 모네에게 빛의 변화를 연구할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이를 통해 색조의 변주를 실험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처럼 눈을 단순히 흰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토색(갈색 계열)과 다양한 푸른색을 사용해 눈 덮인 땅에 빛이 반사되는 효과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모네는 1860년대 후반 동안 여러 점의 "눈 효과(Effets de neige)"를 제작했다. (...) 실제로 모네는 1868년 12월 바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르망디의 시골 풍경은 여름보다 겨울이 어쩌면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Le toit visible à gauche serait celui de la ferme Saint-Siméon, le lieu de rendez-vous des peintres qui séjournent et travaillent alors régulièrement dans ce coin de Normandie : Troyon, Daubigny, Corot, Courbet, Boudin, Jongkind ou Bazille...et bien sûr Monet. En choisissant un tel thème, ce dernier suit l'exemple de Courbet qui avait eut recours à des paysages enneigés dans diverses scènes de genre. Mais, contrairement à son aîné, dont le motif principal reste le cerf avec le chasseur et qui multiplie les anecdotes, Monet peint un paysage quasi désert, n'attribuant à la charrette et à son occupant qu'un rôle très secondaire. La campagne recouverte de neige donne à Monet l'occasion d'étudier les variations de la lumière et de jouer sur les nuances. Souhaitant rénover la représentation du paysage, l'artiste utilise un nombre limité de teintes. Il privilégie les terres, c'est à dire les couleurs brunes, et les bleus qu'il décline en de multiples tons pour iriser le sol de reflets, au lieu de le représenter uniformément blanc. Monet peint ainsi plusieurs "effets de neige" au cours de la seconde moitié des années 1860. (...) C'est d'ailleurs en décembre 1868 qu'il avoue dans une lettre à son ami Bazille trouver la campagne normande "peut-être plus agréable encore l'hiver que l'été...".) (출처: 오르세 미술관)
🔹 1917년: 마지막 옹플뢰르 방문과 회고
반세기가 지나, 77세의 모네는 마지막으로 옹플뢰르를 찾았다. 그는 이 여행에서 르 아브르, 에트르타, 이포르, 푸르빌, 디에프 등 노르망디 지역을 돌아보며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무명과 가난을 딛고 성공한 노년 작가가 된 모네는 옹플뢰르를 찾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화상 조셉 뒤랑-뤼엘(Joseph Durand-Ruel)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그가 편지에서 다짐한 것은 작업에 대한 열의였다.
이렇게나 많은 추억과 수고한 일을 다시 보고 다시 체험했던 저의 작은 여행에 만족하며 이곳에 돌아왔습니다. 옹플뢰르, 르 아브르, 에트르타, 이포르, 푸르빌, 디에프 모두 유익했고, 저는 더 열정적으로 작업할 거예요. (Me voici de retour ici, ravi de mon petit voyage, où j’ai revu et revécu tant de souvenirs, tant de labeur. Honfleur, Le Havre, Étretat, Yport, Pourville et Dieppe, cela m’a fait du bien, et [je] vais me remettre avec plus d’ardeur au travail.) (출처: Benjamin Findinier, Claude Monet Honfleur, Paris, Éditions des Falaises, 2021, p.62.)
옹플뢰르, 그리고 모네의 예술적 여정
- 1858년, 르 아브르에서 외젠 부댕과의 만남을 통해 야외에서 빛과 색을 관찰하며 그리는 법을 배웠다.
- 1862년, 처음 옹플뢰르를 방문하고 세느강 하구의 빛과 대기 변화에 매료되었다.
- 1864년, 부댕과 함께 세느강 하구와 항구 풍경뿐만 아니라, 옹플뢰르의 거리와 주변 시골 풍경을 그리며 야외 사생 기법을 실험했다.
- 1866~1867년, 생시메옹 농장에서 눈 덮인 풍경과 나무, 성당 등 다양한 소재를 연구하며 색채 표현을 확장했다.
- 1917년, 마지막으로 옹플뢰르를 찾아 과거를 회고하며 창작의 열정을 되새겼다.
모네는 항구뿐만 아니라 옹플뢰르의 골목, 시장, 성당, 시골 마을 풍경까지 다양하게 그렸으며, 이를 통해 빛이 공간과 형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말년에 "나는 모든 것을 부댕에게 빚졌다."라고 회상하며, 이곳이 자신에게 중요한 실험의 장이었음을 말한 바 있다.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 (Pour voir, il faut oublier le nom de la chose que l'on regarde.) – 클로드 모네
모네가 사랑한 곳이자 그의 스승인 부댕이 태어난 곳, 옹플뢰르
평생을 빛을 색으로 담았던 클로드 모네. 그가 사랑한 옹플뢰르는 내가 여행 가이드로 일 하며 100번도 넘게 방문한 곳이다. 오늘날 옹플뢰르는 관광지로 발전해 부댕과 모네가 그렸던 노르망디의 소박한 시골 마을의 풍경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외젠 부댕이 영감을 받았다고 했던 세느강 하구의 하늘의 빛과 움직임이 나를 감싸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제는 빛을 따라 다녔던 외젠 부댕과 클로드 모네의 시선이 되어서 옹플뢰르의 유명한 구 항구와 성 카트린느 교회를 벗어나 조용한 골목 곳곳을 걸어봐야 겠다고 다짐한다.
아래는 지난 2년 동안 옹플뢰르를 방문했을 때 마다 아이폰으로 담아둔 순간들이다. 이 순간들도 참 좋았다. 옹플뢰르는 관광지지만,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출처
📖 책
🌐 웹사이트
🪷 [클로드 모네의 집과 정원 – 지베르니] 공식 사이트
🪷 [오르세 미술관] 공식 사이트
🪷 [Galerie d'art à Paris 8] 사이트